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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 talk:Lark H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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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인생의 여유

재주도 울레 길이 유명하다 캐나다에도 토론토에서 한시간 반 거리에 학클벨리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도 울레길이 있다 온타리오 주외 제주도가 자매결연을 맺어 울레길과 같은 산책 길을 만들었다 코스는 다양한데 1 시간 반 정도의 비교적 짧은 길에서 3 시간 이상되는 먼 길도 있다. ‘울레’는 원래 제주도 사투리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누구 보다 숨가쁘게 달리던 한 여성이 ‘놀멍 쉬멍 걷자’며 그 작고 좁은 ‘울레’길을 제안했다는데서 유래한다.

사람의 마음은 불가사의 하다. 마음은 미묘하다. 걷는데도 놀멍 쉬멍 걷기를 좋아한다. 멀리 돌아가는 길 보다는 짧고 빨리가는 길을 원하기도 한다. 사람의 감정의 세계는 참 미묘하다. 내가 나쁜 감정을 품고 있으면 상대방에게 그것이 전해진다. 내가 웃는 마음으로 대하면 상대방에게 웃음 짓는 마음이 전해진다 그래서 좋은 감정을 늘 지닐 수 있도록 자기수련이 필요하다.

상대방은 내게 거울같은 존재이다. 나의 마음이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며 거울처럼 비춰진다. 그 비춰진 마음으로 인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함께 즐거워 하기도 하며 서로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마음의 거울에 희노애락을 담는다. 이런 감정을 진실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인생은 외롭지 않다. 정을 허물없이 나눌 수 있는 사이를 우리는 친구라고 부른다. 나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가 있었다 고교시절 부터의 친구다 아쉽게도 그 친구는 반년 전에 세상을 이별하고 멀리 떠났다. 요즘처럼 가을 낙엽지기 시작하는 날엔 문듯 문듯 그 친구가 생각난다.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던 친구였다.

인생엔 아무리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할 것없이 마음을 트고 정을 나눌 친구가 필요하다. 숨가쁘게 달리던 인생 길을 놀멍 쉬멍 ‘울레’길을 함께 걸을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 특히 나이가 들어 갈 수록 더 그렇다. 쉬엄 쉬엄 더불어 걸을 수 있는 가까운 사람이 있으면 좋다. 인생 길 꼭 뛰어야만 하는가? 쉬엄 쉬엄 느리게 걷는 것도 아름답다. 때로는 걸으면서 관망과 관조가 있으면 더욱 좋다. 그대들이여! 우리 인생을 함께 돌아보면서 느린 걸음의 축복을 하나하나 세어 보세……


비빔밥 문화

나는 서양인들을 상대로 일하면서 한국인들의 비빔밥 문화를 종종 생각하곤 하는데 어떤 문제들이 생기면 비빔밥의 원리로 접근해본다. 서양사람들은 규격과 규칙의 문화를 오랜 세월 속에서 만들어 냈고 이들에겐 규칙 앞에 누구든 평등해야 하는 것이 정의이며 그래야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몸에 배어 있다. 이들은 음식을 만들어도 매우 규격화 되어 있어 소위 '레시페(recipe)' 라고 해서 그 음식이 만들어 지기까지 재료는 어떤 것으로 어떻게 그 양을 분배해서 만들고 얼마 동안 데우고나 끓인 다음에 무엇을 어떻게 섞어야 하는지 그 과정과 절차에 대한 상세한 요리법을 명시해 놓는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 레시페만 보면 똑같은 음식을 만들 수 있게 된다. 물론 요리에 대한 감각과 익숙한 솜씨에 따라 같은 레스페를 따라서 만들어도 그 맛이 다를 수가 있지만 그 요리법을 아주 충실하게 따르기만 하면 웬만큼은 그 맛에 거의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한국문화는 좀 다르다 규격화 보다는 융통성 혹은 여운의 문화라고 할까? 음식도 레스페를 따르게 하기 보다는 직접 견문을 통해 그 요리법을 '감'으로 익히는 방식이 오히려 비중이 커서 훌륭한 요리 기술은 아무나 흉내를 낸다고 그 경지에 이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요리법이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그 배합방법과 간을 맞추고 양념을 만드는 솜씨와 가열방식의 기교, 그릇 안에 담아 놓은 다음 기묘하게 양념을 배합하는 방식 등에 따라서 독특한 맛을 낼 수 있다. 이를테면 만드는 사람의 멋감각과 솜씨 또는 취향에 따라서 자기 나름대로의 독특성을 만든다. 그래서 개인의 '여유와 멋'을 부릴 수 있는 것이 한국음식이 아닐까?. 원래 우리말의 '맛' 과 '멋'은 그 어원이 같은 말인지라 "맛"을 위해 '멋'을 부릴 줄 아는 것이 한국인의 요리 솜씨이다. 비빔밥을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즐긴다. 원리는 한가지! - 섞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섞고 비벼서 만드는 음식이다. 또 같은 상에서도 개인의 취향이나 선호에 따라 섞는 것을 각각 달리하며 즐기는 멋! 그 만큼 다양성을 지닌 음식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그 안에는 오만 가지가 웬만하면 다 들어갈 수 있다. 비빔밥이라는 것엔 어느 정해진 재료만 들어가야 한다는 규정이 없이 개인의 취향이나 그때 갖출 수 있는 재료 형편에 따라 그야말로 얼마든지 변화를 줄 수 가 있다. 물론 '전주비비밥'과 같은 특정한 재료와 요리방식의 체계화된 비빔밥이 있지만 나는 일반 가정에서의 비빔밥문화를 말하고자 한다

한국인의 정신은 이 비빔밥을 만들고 이를 즐기는 융합의 정신과 문화 속에서 발전하고 한국인의 얼과 그 기는 이런 식사문화에서 배양되어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가정과 사회에서 규정과 법 보다는 융합의 지혜를 소중히 여기며 인간관계를 조화시키고 또 화합의 삶의 방식을 추진하는데 익숙해 있는 민족이다. 그 옛날, 마을 혹은 부락단위의 작은 공동체 생활 속에서 이런 비빔의 얼과 행동방식은 소중했고 그 공동체를 조화시키고 지키는데 중요한 부분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조국의 현대화 바람과 함께 대도시 생활, 대규모 공동체 생활, 큰 조직사회 안에서 새로운 패턴의 삶의 방식을 접하게 되면서 우리 옛 조상들의 얼 -'비빔'의 멋과 얼은 점차 그 빛을 잃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인의 많은 가정에 “가화만사성”이라는 글씨를 벽에 걸어 놓고 있는 것은 옛날처럼 융화가 되지 않기에 이를 염원하고 또 명심하자는 뜻으로 잘 보이는 벽에 걸어 놓는 것은 아닐까? 오늘의 한국인들은 문화적 정신적 혼돈기 안에서 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옛 얼을 아쉬워하고 찾으려 하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내가 서양인들 주류사회 속에서 이들과 어울리면서 발견하는 것은 나의 코리언 얼 속에 아직은 깊숙이 잠재되어 있는 융합의 비빔밥 정신이 있음을 새삼 느낀다는 점이다. 이는 오래 전 어린 시절 가정에서, 성장기의 학교생활에서, 그리고 조직생활 안에서 - 나도 모르게 몸에 익혔던 것인데 하마트면 잊어버렸을 지도 모를 그런 얼이다. 나는 캐나다인을 대상으로 하는 목회 현장인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 공동체 안에서 “융합”의 방식을 은연중 강조하며 비중을 두게 된 것이 이런 나의 문화정신적 배경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본다. 연령과 성별, 직업과 계층, 새신자와 구신자 가릴 것 없이 교회 안 각 조직과 부서의 전체적 융화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예배 형식도 “융합” 의 방식을 시도 한다. 옛 전통과 새로운 모델, 음악과 연극과 예식과 찬양,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중년층과 노인들과 어우러져 구별 없이 섞고 비벼서 예배의 새로운 맛, 공동체의 새 맛을 일구어 내는 시도를 해오고 있다. 물론 매 주일마다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가끔씩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교인들이 변화의 맛과 새로운 영적인 멋을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해 컨퍼런스 미팅에서 별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하고 마주 않게 되었다. 유색인종들 편에서 주장하는 나에 대해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기는 태도를 은근히 보여주었던 백인이었다. 사실인즉 캐나다의 영국계 및 프랑스계 백인들은 다민족 다문화의 이상적인 사회건설을 오래동안 추진해오면서 세계에서 인종차별을 가정 적게 하는 사람들로 정평이 나있지만 아직도 소수 백인들은 인종차별의 선입관을 지니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동유럽이나 남부유럽, 아시아 혹은  남미에서 허입 해 들어 오고자 하는 비영국계 다른 인종과 타 교단 배경의 성직자들에 대한 선발과정에서 인종적 편견이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과거 몇년 동안 Admission Committee 에 속해서 일하면서 편견을 배제하고 정말 자질을 갖춘 목회자들을 객관적으로 선별하여 새 멤버를 받아들이자고 하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말하자면 학력과 교육적 요건, 이들을 추천하는 추천 자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과거 목회 경력에 대한 평가 등을 합리적으로 하여 자질이 갖추어 진다고 확신이 되는 자는 얼마든지 받아들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컨퍼런스 미팅에서 바로 내 앞에 인종적인 편견을 느끼게 하는 면을 보여주는 사람이 앉아 있음을 보자 내 마음 속에서는 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당연히 일어났고 그 사람이 인종을 차별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상상하면서 그 사람의 발언에 대해 색안경을 끼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비판적 나의 모습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갔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연계되어 있다고 믿으면서 상대가 어느 누구든간에 뭔가 배울 것이 있고 나를 성장할 수 있게 하는 무엇인가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평소 지론이었다. 그런데 며칠동안 같은 그룹안에서 마주 앉아 의견과 이야기를 나눌 이 사람에 대해서는 왜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비판적인지, 왜 내가 그 사람과 섞이기를  꺼려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분명히 논리적 정리가 되질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이 지닌 인종에 대한 약간의 편견 때문이라면 그 점을 제쳐 놓고 그 

사람에게서 다른 좋은 점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그 사람을 내 비빔밥 속에 억지로 들어 오게 하고자 하기 전에 오히려 내가 그 사람과 섞여 비비며 그 사람의 가치관과 개인적 고충과 경험내용 속으로 먼저 들어가보기를 왜 시도해보지 않는가? 라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결국 그날 저녁 테이블에 나는 그 사람을 찾아 함께 식사할 기회를 의도적으로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그날 저녁 식사메뉴와 맛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면서 나는 한국인들의 비빔밥에 대해서 화제를 만들어 갔다. 비빔밥문화와 한국인 조상들의 융합의 정신을 잠시 소개하면서 내가 목회하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융합의 현상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가 진전되면서 그 사람은 나를 새로운 관점에서 보기 시작했고 자신의 과거 경험과 묻지도 않은 가족들, 자녀들 이야기를 한참 동안이나 늘어 놓는 것이 아닌가? 식사를 함께 마치고 후식을 들면서 흥겨운 죠크를 나누면서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하고 나서 헤어졌다.

 지금 그 사람하고 이 메일을 통해 좋은 정보와 소식들을 나누는 이메일 친구로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의사인 그 사람은 나에게 최신 건강관리법에 대한 폭넓은 의학 지식을 전해 주고 있다. 그는 나를 통해 동양학과 동양문화에 대한 지식에 접한 것과 요즈음 동양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하면서 나를 알게 된 것을 감사하고 있다. 나는 내가 비빔밥 문화를 전수받아 세계 속 새 시대를 향하는 반열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에 한없는 고마움을 조상들과 선배들을 향해 느낀다.


커피를 들면 

나는 거의 아침마다 커피를 마신다. 그 향기가 좋다. 언제나 기분을 좋게 하는 냄새이다. 주변 다른 냄새들을 흡수한다. 입안의 냄새도 흡수하고 먼지 속의 냄새도 흡수해 버리는 듯 하다. 지인들과 커피를 들다 보면 대화의 내용도 흡수한다. 대화의 분위기를 더해준다.

옛 학창시절 학교 앞 ‘독수리 다방’에 친구들과 모여 분위기를 띄우던 기억들이 되살아 난다. 그 땐 멋을 좋아했다. 나름대로의 멋이다. 뭐 특별한 것 도 아닌데 화제를 만들어 떠드는 맛이 있었다. 클래스에서 못 마땅했던 일, 어떤 교수는 너무 싱겁고 어떤 교수는 재미가 없고 또 어떤 교수는 좋은 분이고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는 둥… 뭐랄 것 제대로 파악도 못하면서도 시국과 정세를 논하기도 하는 제멋대로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도 나름 뭐 꾀나 아는 척하는 맛이 있었다.

분위기가 좋다는 다른 다방도 원정 다녔다. 이화 여자 대학교 부근에도 어슬렁거렸고 충무로에 있는 클래식 음악다방 문을 들어서서 음악과 더불어 그 분위기를 즐기기도 하는가 하면 남산 길로 데이트하다가 언덕길 몫에 위치한 좀 비싼 커피 숍이 있었는데 그 안에 들어가 조 비싼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것 멋이 들었던 것 같다. 그 땐 커피 향이라는 것을 잘 몰랐다. 하지만 좋았다.

커피는 신기한 면이 있다. 단순한 음료수는 아니다. 우선 따뜻해서 가슴을 데워 주고 추위를 녹여 주기도 한다. 대화 중에 침묵이 오면 그 순간을 메꿔 준다. 추억을 그 향과 함께 띄워 주기도 하고 잊고 싶은 일을 잠시 잊게도 한다. 대화의 분위기를 띄워 주기도 하면서 말 놀이의 공간을 넓혀 주기도 하는 것은 커피 잔의 여유스러움 때문이 아닐까? 커피는 함께 한 사람들에게 친근감의 분위기를 더해 준다. 참 신기하다.

커피는 대중적이기도 하며 또 귀족적이기도 하다. 대중적인 것은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면이고 귀족적이이기도 하다는 말은 값 비싼 분위기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 아메리카의 작은 시골에서 재배하던 것을 서구인들이 우연히 발견하게 되어 시작된 그 맛이 이제 전 세계 사람의 기호물이 되었다. 동양인도 서양사람들도 귀하다고 칭하는 사람들도 평범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모두의 공통 기호물이다.

나는 그래서 커피가 좋다. 물론 그 향기와 맛이 좋기도 하지만.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매력 포인트를 지닌 따뜻한 음료다. 오늘 아침에도 방금 커피를 들며 옛 대학 시절 추억을 떠올려 보고 최근에 있었던 일들의 멋과 맛을 되새겨 본다. 그리고 몸 안으로 스며드는 향기를 음미한다. 참 좋은 냄새가 코 끝을 통해 스며든다. 최근의 긴장을 녹여 주는 향이다. 커피는 신기하다. 삶에 맛과 멋을 만들어 준다. 나는 내일도 모래도 커피를 들며 삶의 내용을 음미할 것이다. 커피가 주는 맛을….

가족은

[edit]

친구들이여 부활절 휴일을 잘 보냈으리라 믿소 올해 소망하시는 일들에 좋은 결실있기를 기원하오. 특히 모두들 건강하시고.... 휴일들은 가족의 의미를 특별히 생각하게 하는 시기임에 틀립 없소. 가족은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들’ 이라고 하오. 그리고 가족은 가장 편한 사람이오. 가족이 있어 사람들은 가정을 보금자리로 여기고 찾지 않소? 물론 가족 때문에 울기도 하지만 웃기도 하고 기뻐하며 사랑을 배우는 것이 아니오? 제 아내는 가족에 대해 좀 유난스러운 여인이오. 아주 작은 일에도 마음 졸이고 불안해 하기도 하고 또 행복해 하기도 하는 타입라오. 음식을 대충 차리기도 하다가도 어느 날은 가족 상을 준비하느라 오븐과 후라이팬을 달구며 여기저기 그릇과 용기를 늘어놓고 요란 법석을 떤다오 내 서재에 앉아 일을하다 보면 음식냄새가 코끝을 즐겁게 하는데. 이 모든 진동하는 냄새는 분명 가족을 생각하는 데서 오는 것인가 보오

나는 부엌에서 풍기는 이런 냄새를 아주 좋아한다오. 가족 냄새를 진하게 주기 때문인데. 그 냄새는 때론 얼큰 하기도 하고 때론 구수하며 어떤 때는 시원하고 또 달콤하고 다른 때는 매콤한가 하면 또 씁쓰름하기도 하오. 어느 순간에는 탄 냄새가 코를 찌르기도 한다오. 이런 다양한 냄새들을 가족관계의 다양성과 흡사하다고 보고 싶다오. 가족 관계는 그야말로 복잡하고 얽혀있어 한 가지로 정의할 수는 없는 것 같소. 하지만 가족은 분명 함께 평생 가는 관계이고 평생 나누며 사는 공동체임에는 틀림 없소

가족이 모두 함께 있는 친구들도 있고 혜어져 있거나 떨어져 사는 친구들도 있는 줄 아오 안타깝게도 사별한 친구도 있을 것이오 그 슬픔과 아쉬움을 뭐라고 표현해서 위로할 수는 없을 것이오만 감당해 가시길 기원하오 아무튼 모든 친구들 가족관계를 하늘이 보살피시고 선히 인도하시길 바라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더 밝고 건강하게 사시기를 비오. 모든 친구들의 가정에 평화와 즐거움이 가득하고 집안에 맛있는 냄새와 향기로운 냄새가 진동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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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McClenon (talk) 21:01, 2 May 2019 (UTC)[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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